포스트 코로나[6]_세계관의 전복_김누리_(2/2)
"사회가 강요한 원트로는 버텨낼 수 없다." 행복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DAY11 (1/2)편에 이어 서평하겠습니다.
분노가 아니란 불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우리의 감정은 정확하게 정의되어야한다. 김경일 교수는 불안은 정확한 사실로 잠재울 수 있으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투명한 공개시스템뿐이라 말한다.
인간은 무한 욕망을 추구하는 사이클에 같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행복의 척도는 바뀔 것이다. 적정한 기술이 최고의 기술보다 중요하듯, 적정한 행복이 무한한 욕망보다 우선시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원트가 아닌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면서, 더 적은 것을 가지고 적정 기술로 공존하는, 그런 삶을 살 것이다.
이것은 이번 사태의 결과임과 동시에, 넥스트 코로나가 또다시 찾아왔을 때 인류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생존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 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했다.
사실과 진실을 어떻게 다른가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일',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는 식의 표현을 쓰고, 진신은 '감춘다', '밝힌다' 같이 드러냄을 의미하는 동사적 표현과 결부시켜 사용한다.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한다. 불안은 사실을 알려달라는 감정이고, 분노는 진실을 말하라는 감정이다. 우리가 광장에 나갈 때는 분노해서 나간다. 광장에 나간 시민들은 진실을 말하라고 얘기한다. 그럴때 '아니야, 이거 별문제 ㅇ벗는거야.'라고 사실관계만 얘기하면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이 대표적은 예로 언급하는 것이 2008년 촛불시위를 촉발한 광우병 사태이다.
광우병 사태때 시민들이 분노해서 광장으로 나갔다. 우리가 왜 이걸 먹어야 하는지 진실을 얘기하라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수입한 쇠고기가 신체에 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실을 몰라서 나간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저 사실만 예기하니까 분노가 사르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 사건의 사실을 알고 싶은게 아니라, 왜 이런 사고가 계속 일어나는지 구조적 진실을 알고 싶고, 세월호 사고의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지, 사실을 알고 싶은게 아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입한 진실과 사실의 어법
코로나19는 불안이지 분노가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분노하는게 아니라 불안한것이다. 불확실하니까 불안이 커지고, 불확실함은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 한국정부나 한국시스템이 잘한 게 그것이다. 사실을 알게 되니 '아, 감염 위험은 높겠구나. 그런데 치명률은 이 정도겠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에너지와 사회, 혹은 집단 에너지를 좋은곳에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중요한 시점에 "진실은 말이야."하며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이 있다. 음모와 가짜 뉴스의 희생자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신인류에게 필요한 건 '지혜로운 만족감'
우리는 분노를 많이 해봤다. 그래서 분노해야 할 때와 분노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알고 있다.
끊임없이 돈은 버는 사람들을 두고 만족감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워커홀릭. 무한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만족감이라는 기제가 뇌에서 거의 발달하지 않은 사람이다. 만족하면 멈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이다. 너무 쉽게 만족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 현대사회의 선진국 대부분이 만족감이 너무 발달하지 않아서 문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원트' 아닌 나만의 '라이크'로
풍선을 사달라고 하는 아이한테 훙선을 사줬더니 5분 있다가 풍선 줄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원하는 걸 얻었는데 팔이 아프다고 그냥 놓아버린 것이다. 어떤가 어이가 없는가. 그런데 그날 찍은 사진을 보니 풍선을 사달라고 조르던 주위 모든 다른 아이들이 모두 풍선을 갖고 있었다. 나만 안가지고 있으니까 원했던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으로 원트(want)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풍선을 놓아버리고선 혼났던 곳에서 찍은 사진에선 주위에 아무도 풍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풍선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다시 말해 라이크(like)는 없는데 그저 사회적으로 원트한 것이다.
Like 는 내가 좋아하는 것, Want 는 사회적인 것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우리는 사회적으로 훨씬 더 많이 돌아다니면서 이것도 가져야지, 저것도 가져야지, 하면서 끝없는 만족의 사이클을 돌았다. 그러다 이번 사태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이 1,000번을 저어서 달고나 커피를 만들었다. 자기만의 라이크가 생긴 것이다.
정말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회적으로 원하는 걸 계속 추구하다 보면 훨씬 더 많이 벌어야 한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훨씬 더 많이 뺏어야 한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걸 알고 그에대한 역량을 발전시키는 사회나 문화에선 더 적은 걸 가지고 공존하면서도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의 척도가 바뀐다는 것
척도, 척도를 바꾼다고 한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직관적으로 아는 것처럼 기준이 바뀐다는 것이다.
원트에서 라이크로 기준이 변해야 한다. 라이크가 나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원트는 '인정 투쟁' 이다. 남에게 인정 받기 위해 투쟁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40평 짜리 집에 사는데 50평 짜리 집에 가고 싶은 이유가, 50평 짜리 집에 사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큰 차를 가지고 싶은 이유는 큰 차 타는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싶어서다. 끊임없이 비교 우위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할 수 없다.
인정 투쟁에서 벗어나려면
남 눈치 볼 필요 없다. 중교한 건 내 삶이다. 모든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좀더 복잡해지고, 다음 세대보다는 좀 더 단순하다. 낫다 못하다가 아니라 감정 체계가 복잡 미묘해진 것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남의 인정이나 남의 감탄을 받을 기회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서로 안 만나는 비대면 사회가 되었고 혼자놀기에 익숙해져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일단 나에게 충실한 경험을 해야 된다. 보람이다. 나이가 많아서 돌아가신 분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보면 '살아서 돈을 더 벌걸' 하고 후회하는 분은 거의 없다.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못갔다.'며 후회하지도 않는다. 중국 삼국시대의 조조 역시 죽을 때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해 원통하다'고 하지 않았다. 조조는 사람들한테 너무 못되게 굴어서 보람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자기 무덤을 파헤칠까 두려워 자기 무덤을 72개 더 만들라고 하고 죽었다.
지위고하와 상관없이 성공여부를 막론하고 사람은 죽을 때 이런 후회를 한다고 한다. '그 친구한테 더 잘할걸', '그 사람한테 더 잘해줄걸' 이게 무슨뜻인고하니 보람이라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잘 지내온 흔적, 다른 사람과 공존한 삶의 흔적이란 얘기다.
교도소에서 내리는 가장 강한 처벌은 보람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는 독방 수감이다. 죄를 짓고 다같이 수감되어 있지만 거기서도 보람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조금씩 도와주는, 그런 재미있는 행동을 한다. 그런 보람조차 못 찾도록 하는 것이 독방 수감인 것이다.
3점 척도에서 7점 척도로, 라이크에 민감해지다
미시적 의미의 척도로 '리커드 척도'이다. "매우 그렇다 / 그렇다 / 보통이다 / 그렇지 않다 / 매우 그렇지 않다"는 5점 척도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이 척도가 변하고 있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다.
예전에는 전 국민이 다 보고, 전 국민이 다 신고, 전 국민이 다 입는 것들이 있었다. 소위 대박 드라마라고 하면 시청률이 60퍼센트, 70퍼센트 까지 나왔었다. 하지는 요즘은 그런게 잘 없다. 그만큰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원트가 아닌, 한 명 한 명 각자의 라이크가 중요해지면서 기업은 대박 신화에서 벗어나 완판 개념으로 가야 한다. 너 빼고 다샀어 라는 원트를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눈금을 5점에서 7점으로 세밀하게 맞춰 소량이지만 완판하는 지혜로운 개념이 필요한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는 지났다.
심지어 마스크도 다양해진다. 마스크를 통해 개성을 뽐내기도 한다.
행복의 척도가 달라지면 기업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예전에는 반 친구들이 특정 브랜드의 운동화를 패딩을 사면 다 따라샀다. 없으면 사횢거으로 고립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남이 신은 것 입은 것과 똑같으면 창피해 한다.
그동안의 자본주의사회, 자본주의경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남이 하는 걸 따라하게끔 부추기면서 자꾸 소비를 촉진시키는 약간은 거품 속에 지탱해온 경제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적정한 행복'
우리 경제도, 우리 기업도 이미 인간의 무한 욕망 추구를 부추겨선 지탱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무한 욕망을 추구하다 보면 한정 없이 자연을 파괴하게 되고,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계속 나타날 걸 깨달았다. 우리는 분노를 많이 해봤다. 그래서 분노해야 할 때와 분노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알고 있다.
끊임없이 돈은 버는 사람들을 두고 만족감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워커홀릭. 무한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만족감이라는 기제가 뇌에서 거의 발달하지 않은 사람이다. 만족하면 멈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이다. 너무 쉽게 만족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 현대사회의 선진국 대부분이 만족감이 너무 발달하지 않아서 문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는 불안이지 분노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코로나 때문에 '분노'하는게 아니라, 코로나 떄문에 '불안'한 거잖아요. 그런데 불확실함을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해소될 수 있습니다.
적정 기술이 인류에게 가장 행복한 기술이라는 말이 있죠. 적정한 삶과 적정한 기술, 적정한 행복감이 어디인지, 그 점근선을 찾아가는 계기를 우리가 이번에 만난 겁니다.
'독서 > 한달서평8기(20.08.01~08.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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