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하지 않고 우아하게 리드하는
말센스
08 머릿속의 생각은 그대로 흘려보낸다
대화를 하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라면 이랬을 텐데', '그땐 이랬어야지', '왜 그런 생각을 고집할까',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상대의 말에 내 얘기를 끼워넣고 싶은 본능이다.
그 본능을 흘려보내라.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화 상황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딴 생각을 한다.
상대가 자동차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내가 사고 싶었던 자동차를 떠올리고, 상대가 맛이 좋았던 파스타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엊그제 맛 보았던 형편없는 파스타를 떠올리는 식이다.
스트룹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주어진 정보와 무관한 정보를 무시할 수 있는지 측정하는 테스트다. 이 테스트를 실행하면 당신은 단어 자체가 아닌 문자의 색으로 그 단어를 시별하도록 요청받는다. 예를 들어, '하얀색'이란 단어가 나타났는데, 그 단어의 색깔이 오렌지색으로 돼 있다면 당신은 '오렌지색'이라고 말해야 한다. 대화 상황에 비유하자면 여기서 '하얀색'이라는 단어는 대화에서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요인이고, '오렌지색'은 우리가 집중해야 할 대화 내용이다.
스트룹 테스트를 해본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답을 맞히기가 힘들다는 사실에 절망하곤 한다. 나는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제시할 수 있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이 산만해지는 소질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당신은 산만한 외부 자극을 걸러내는 비상한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고도로 발달된 '잠재적 억제latent inhibition'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타임스퀘어 광장 한복판에 앉아 학위 논문을 작성할 정도로 주의 집중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잠재적 억제 수준이 높다면, 당신은 아마도 개방형 사무실 혹은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카페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성향이 낮다면 당신은 방해 요인을 차단하고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 헤드폰을 써야 할 것이다. 이 잡재적 억제 성향이 극도로 낮은 사람들은 사무실 팡밖에 비둘기만 날아다녀도 상대의 말에 집중하기 힘들다.
쉽게 산만해지는 성향은 꽤나 흔하고 자연스러운 성향인 만큼, 성격상의 결점과는 무관하다. 심지어 이런 성향은, 당신이 '아직 물이 반이나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낙관론자라면, 성격상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훌륭한 대화를 위해 애를 쓰는 상황에서는 분명 이런 성향이 아무런 도움도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단점이 된다.
훌륭한 대화를 나누려면 집중을 해야 하며, 그것도 두사람이 똑같은 주제에 동시에 집중을 해야 한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의 사앙 부분을 기꺼이 무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산만함이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문제다. 무작위로 떠오르는 당신의 생각과 연상 내용들은 상대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내용들과 맞아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이 대화의 훌륭한 첨가제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대화를 순조롭게 진행시키려면 당신은 생각이 마음속을 그냥 통과해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해가 되는 생각들을 무시하도록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요즘 사람들이 현실에서 나누는 대화를 관찰해보면 온라인상에서의 경험과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 대부분이 인터넷상에서 '읽는' 기사의 절반 가량을 스크롤로 그냥 내려버리듯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웹사이트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기능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링크 클릭 기능이다. 무언가를 읽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행동이 우리를 곁길로 빠지게 만드는 '링크 클릭하기'인 것이다. 글 하나를 다 읽기도 전에 다른 링크를 클릭하여 또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이처럼 끊임없이 곁길로 빠져들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어쩌면 이런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대화에서 더 이탈하도록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화가 자유롭게 흐르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의 통제권을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솜씨가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농담을 던지거나 저런 재담을 삽입해 넣고자 하는 강력한 유혹이 수시로 생겨난다. 그런 유혹에 저항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자신이 대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은 단지 대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재기 넘치는 말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사실 미묘한 형태의 나르시시즘에 불과하다.
명상은 쉽게 산만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명상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관찰한 뒤 그 생각을 그냥 놓아 보내는 법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명상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면 그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불현듯 떠오르는 상념들을 붙들지 않고 놓아주면 된다.
일단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생각을 알아차렸다면, 그 생각과 싸움을 벌이지도, '머릿속을 청소'하려고 애를 쓰지도 말라. 당신은 뇌가 생각하는 것은 막을 수 없고, 생각에 능동적으로 저항을 해봤자 정신만 더 산만해지기 쉽다. 그러는 대신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면 단순히 혼잣말로 "생각이로군"하고 말한 뒤, 대화로 다시 주의를 되돌리면 된다.
대화가 가치 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만 탐닉하는 대신 다른 누군가의 생각과 느낌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공감하면서 인내력과 집중력이 자연스럽게 커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고, 창의력까지도 키울 수 있다. 대화란 좀 과장하자면 상대방의 뇌를 나의 뇌와 접속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뇌속에는 나의 뇌가 가지지 못한 지식, 통찰력, 공감력, 창의력, 유머감각, 표현력이 무궁무진하다.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제대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많은 보물들을 버리는 것과 같다.
인간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눙력을 가졌기 때문에 영장류 가운데 가장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인간들 사이의 우열 또한 대화를 하는 능력이 크게 좌우한다.
'독서 > 한달독서10기(20.11.01~11.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08_[말센스]_10이 얘기에서 저 얘기로 건너뛰지 않는다 (0) | 2020.11.08 |
---|---|
DAY07_[말센스]_09좋은 말도 되풀이하면 나쁜 말이 된다 (0) | 2020.11.06 |
DAY05_당신의 동료는 누구인가요? (1) | 2020.11.05 |
DAY04_[말센스]_07잡초 밭에 들어가 배회하지 않는다 (6) | 2020.11.04 |
DAY03_매일 읽고 쓰기 위한 계획은 무엇인가요? (0) | 2020.11.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