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한달서평9기(20.09.17~10.16)

DAY25_[말센스]_02선생님이 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kmhbgvdxa 2020. 10. 11. 23:37

 


흥분하지 않고 우아하게 리드하는

말센스

 

02 선생님이 되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상대가 물어보지 않는 것조차 길게 설명하려고 할까?
그 이유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상대에게 충고나 조언을 함으로써 그사람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고(통제병),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로부터 관심이나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관심병)

 

 

 


가족 관계에서, 친구 관계에서, 직장 동료 관계에서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만 나오면 끼어들고 충고나 조언을 한다. 그것도 아주 세세하고 길게

그들은 어떤 한 분야라 여러 분야의 저문가이기도 하다. 어떤이는 연애 전문가이고, 어떤이는 심리 전문가이다. 또 결혼 전문가(혹은 이혼 전문가)이고, 직장생활 전문가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그 분야에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처럼 행세하고 있을 뿐이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는 것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듣는다는 것은 지루함을 넘어 괴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길게 설명하려는 것일까? 단순히 수다를 떨고 싶기 때문일까? 수다를 떨고 싶다면 자기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되지 굳이 왜 남의 상황까지 끌어들여 이야기하는 것일까?

일종의 통제 본능이다.

누군가에게 충고나 조언을 함으로써 그 사람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은 바로, 부모이거나 선생님이거나 직장 상사다. 그들은 자식과 학생과 부하 직원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또 다른 이유는 관심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에서도 충고나 조언을 유독 많이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관심이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친구라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병에 걸려 있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잘 멋어나지 못한다는 걸 얘기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보다 학력이 낮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가난하거나, 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통제병이나 관심병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정상인이라면, 당신은 아마도 편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기피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적으로 나보다 교육을 덜 받았거나 지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세계관이 나만큼 원숙하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더 좋은 학교를 다니고,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더 개방적이고, 더 열려 있을 거 같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 더 똑똑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편견에 더 잘 빠진다.

"도리어 인지 능력이 뛰어날수록 편견의 사각지대가 더 넓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편견은 무의식적 편견이라 불린다. 그 편견은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 스스로는 거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이 유형의 편견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상대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예를들어,
직업적 편견이 그렇다.

전문직이 아닌 사람이 의사나 판사, 검사와 같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면,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의외로 고지식한 면이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상당수의 전문직들이 고정 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또,
문화적 편견도 무시할 수 없다.

학교에서는 사람을 피부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배우지만, 많은 사람들이 백인에게는 좀 더 우호적이고, 흑인에게는 경계심을 갖는다. 또 장애인을 파별하면 안된다고 배웠지만, 실제로 장애인과 조우하게 되면 그들을 낮잡아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지체 장애인일 경우 자신과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보고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자기는 일류 대학을 나왔다면서 일반대를 나온 사람을 얕잡아보기도 하고, 대학을 나온 사람은 고졸인 사람을 무시하기도 하며,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을 낮잡아 본다. 심지어 자신보다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은 더 똑똑할 것이고, 못생긴 사람은 지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우리가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바꾸지 않고 있는 편결일 뿐이다. 무의식적 편견은 스스로 그런 편견을 지녔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만큼, 바꾸기가 훨씬 더 힘들다.

어쩌면 당신은 자신이 편견을 지녔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자신의 편견을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어떤 측면에서는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편견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편견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그 편견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 게다가 편이란 문제에 아무리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해도, 당신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그 모든 편견을 다 알아차리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런 편견을 무의식적 편견이라 부르는 것이다.

 


역류효과 backfire effect

편견을 깨뜨리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려주는 심리학적 용어이다. 조지아주립대학과 미시간대학에서 수행된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뜨거운 정치적 이슈와 관련 된 일련된 가짜뉴스를 제공해주었다. 그런 뒤 그들은 피험자들에게 그 가짜 기사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해 주는 정확한 뉴스 기사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진짜 뉴스 기사를 읽은 뒤, 먼저 읽은 가짜 뉴스를 도리어 더 강하게 신뢰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현상을 역류 효과라고 한다. 무언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틀렸다는 점을 알게 되었을 때, 오히려 원래의 그긋된 신념에 더 고집스럽게 집착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므로, 당사자 스스로가 '나도 내가 틀렸따는 걸 알아. 하지만 나는 그 거짓말에 계속 집착할거야'와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부정확한 정보를 교정하는 행위가 역효과를 일으켜, 사실이 아닌 것에 더 완고하게 집착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역류효과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대화를 하면서 정치넉 논쟁을 하지 맣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적 논쟁이 사실에 기반을 둘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는 건 멋진 일이다. 하지만 과연 정치에 대해 논쟁을 벌이느라 힘을 뺄 필요가 있는 것일까? 뜨거운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러고 보니 네가 옳아. 내가 틀렸어. 일깨워줘서 너무 고마워."

아마도 그런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면 논쟁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 주장만 하고 끝났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대화에 임하기 전에, 특히 당신 자신과 다른 신념을 지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라.

'이 대화로부터 무엇을 얻어내길 바라는가?'
'대화가 끝날 무렵 어떤 기분을 느끼길 바라는가?'


아마도 당신은 상대의 마음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목표는 당신 자신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대화를 통해 상대가 얻게 될 혜택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당신 스스로 얻게 될 혜택은 결정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편견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상대의 편견을 교정하겠다는 태도로 대화에 임하는 것은 얼마나 주제넘은 행동인가? 지적 능력과 교육 수준은 우리를 고정관념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한다.

결국 다른 사람이 편견을 가지고 나와의 대화에서 이러쿵 저러쿵 충고나 조언을 하는 것이 마뜩잖다면, 내 자신 또한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무의식적인 편견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편견을 줄여나갈 수는 있다. 누군가 나에게 불필요한 충고과 조언을 과하게 하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내가 혹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솔직하고 정중한 대화의 목표는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당신 자신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당신 자신의 의견이 얼마나 확고하든 간에, 모든 대화에서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보기 바란다.

"혹시 다른 사람의 의견이 옳은 건 아닐까? 그들은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걸까?

 

우리는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쪽을 더 선호한다. 우리가 이미 품고 있는 견해를 지지하는 뉴스를 듣고 싶어 하고, 우리가 싫어하는 내용을 포스팅하는 사람들과는 아예 친구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 의견에 맞게 재단되는 것을 비단 정보뿐만이 아니다. 개인적 관계 역시 품고 있는 의견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매일같이 그들을 만난다. 만약 우리가 그들과 진솔하고 정중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로 우리 앞에 있는 그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겠는가?

 

"대화 상대가 마음을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점점 더 경계를 풀면서, 자기 마음의 심연을 상대에게 기꺼이 털어놓으려 할 것이다. "

"모든 사람이 내게 가르쳐줄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표현하고 싶다면 블로그에다 글을 써라. 하지만 상대방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자신의 견해를, 최소한 잠시 동안만이라도, 한편으로 치워놓아야 한다.

이것을 한번 경험해 보면, 아마도 이전의 태도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이전보다 성장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자신의 견해는 잠시 치워놓아라
자신의 견해는 블로그에다 글로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