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새로운 기회
01 오래된 미래, 메타버스가 온다
2030 메타버스에 살다 #삶
아바타가 살아가는 디지털 지구
VR은 메타버스입니까?
향신료(SPICE)와 메타버스
메타버스의 렌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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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김상균
07:00 ~ 10:00
조기 축구 모임이 있는 날이다.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미리 온 멤버들이 제법 많다. 몸을 풀고 있는 멤버들의 볼록하게 나온 배를 보며 조기 축구가 몸매와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할 때쯤 멤버들이 전부 도착했다.
그렇게 모인 우리는 곧장 라이트 고글을 쓰고 전월을 켰다. 순간 사람들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배불뚝이 선배의 모습은 왕년에 뛰어난 축구 실력과 빼어난 외모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으로 변했다. 옆의 키 작은 친구는 명문 축구 클럽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리오넬 메시Lonel Messi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의 모습은 손흥민의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만의 A매치가 시작됐다. 메시의 투박한 드리블에 이은 패스, 공을 받은 동네 손흥민은 왼발 슈팅이 엉망이다.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 스타의 모습을 하고 즐기는 조기 축구는 항상 새롭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메타버스는 늘 우리에게 신기한 일상을 선물한다.
10:00 ~ 12:00
나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시간에 맞춰 미리 디자인해둔 가상 강의실에 학생들을 초대했다. 학생들은 도착하자마자 새롭게 꾸민 강의실을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다. 미리 벌어두었던 메타버스 코인으로 공간과 소품을 구매해서 강의실을 꾸며놓은 보람을 느낀다.
학생들의 머리위에는 상태창이 떠 있다. 과제를 했는지, 수업 자료를 미리 읽고 왔는지, 출석을 잘하고 있는지 등 다양한 강의 관련 정보들이 담겨 있다. 간단한 강의가 끝나고 팀별 주제 토론을 위해 강의실을 스타벅스 카페 형태로 바꿨다. 금세 학생들은 삼삼오오 테이블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인다.
놀이터, 카페,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가는 수업. 가상세계Virtual Worlds 메타버스가 없었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학생들을 보내고 수업의 핵심 클립 몇 개를 메타버스에서 공개 대학을 운영하는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허용해주는 것을 끝으로 오전 수업을 마쳤다. 물론 2만 메타버스 코인은 덤이다.
12:00 ~ 13:00
오후 1시에 후배와 점심 약속이 있다. 집 앞에는 오전에 미리 불러둔 자율주행 차량이 대기 중이다. 차량에 탑승하면 인공지능 버추얼 빙Vitual being 비서인 앤디가 내게 인사를 건넨다. 내게 목적지까지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고 말하며 잠시 쉴 것을 권한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자율주행 차량의 내부는 모두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Interactive display로 가득 차 있다. 앞뒤 좌우로 자리한 디스플레이에는 파도가 철썩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고, 천장에는 얼핏 보기에도 따뜻해 보이는 햇빛과 광활한 하늘이 보인다.
앤디가 내게 묻는다. "도착시간까지 40분 남았는데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볼래요? 원래 러닝 타임은 80분 이지만 지루해할 만한 부분은 내레이션으로 대체해서 40분에 맞춰서 보여 줄게요." 앤디와 영화를 보다 보니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앤디는 메타버스 속 인공지능 캐릭터이지만 진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13:00 ~ 14:00
후배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잠시 인사를 나누는데 어느새 종업원이 옆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보시면서 라우라우 요리에 흥미를 보이셨던것 같은데, 라우라우로 준비해드릴까요?"
이내 후배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오는 길에 로그 기록을 공유하면서 영화를 봤냐는 눈빛이다. 생각해보니 영화를 시청할 때 메타버스 코인으로 콘텐츠를 구매하지 않았다. 코인을 아끼자는 생각에 내 로그 기록을 공유하는 옵션으로 영화를 봤다. 이렇듯 라이프로깅Lifelogging 메타버스에서는 내가 원한다면 보고, 듣고, 만나고, 느끼는 모든 정보를 자동으로 기록할 수 있다.
식사를 마친 후 후배가 선배 덕에 새로운 음식을 접했으니 자기가 셔츠 한 벌 선물해주고 싶다고 한다. 왠지 영화 볼 메타코인도 없냐는 짠한 눈빛이 살짝 마음에 걸린다.
14:00 ~ 15:30
후배와 함께 위층 쇼핑몰로 향했다. 후배는 나와 달리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어울릴 만한 셔츠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후배는 내게 우리 집 드레스룸에 접속해도 괜찮냐고 묻는다. 드레스룸에 접속할 수 있는 코드를 건네주고 각자 라이트 고글을 쓰자 우리가 있던 옷 가게에 새로운 환경이 펼쳐진다. 후배는 여러 셔츠를 대보곤 마침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역시 눈썰미 좋은 후배에게 맡기길 잘했다.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자율주행 차량 안에서 아내에게 새 옷을 자랑했다. 아내는 라이트 고글을 쓴 채 내 드레스룸에 있는 옷과 오늘 선물 받은 핑크색 셔츠를 이리저리 맞춰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우리만의 패션쇼가 끝나고 아내는 내게 잘 코디해서 입으면 새사람이 될 것 같다고 웃는다.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그럼 지금 내가 헌 사람이냐고 농담을 건네며 통화를 종료했다.
15:30 ~ 17:30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소파를 향해 달려갔다. 오늘은 한국과 독일의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다. 라이트 고글을 쓰고 구매한 포지션 티켓을 사용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의 시점에서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선수가 보는 시야가 눈앞에 펼쳐지고, 그가 듣는 소리가 내 귀에 생생하게 들린다.
오늘 내가 구래한 포지션을 골키퍼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조기 축구 선배의 조언대로 골키퍼 포지션 티켓을 구매했다. 골키퍼 포지션의 시야가 경기 전체를 볼 수 있어서 더 흥미롭다고 했다.
17:30 ~ 19:00
오늘 저녁 당번은 나다. 뭘 먹을까 고민하며 유튜브에 접속했다. 유튜브의 유명한 요리사가 오늘의 요리로 프랑스 요리 레시피를 올렸다. 나는 메타버스 코인 10개를 지불하고 고글에 레시피를 다운로드받아 요리를 시작했다. 고글으 ㄹ머리에 쓰자 내가 보는 시야 위로 다양한 AR 정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냉장고 어느 칸에서 어떤 재료를 꺼내면 될지, 재료를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 언제 재료를 냄비에 넣어야 할지 등의 조리 정보가 현실 위에 오버레이됐다.
"왁!"
한창 요리에 집중하고 있었을 때 누가 나를 놀라게 했다. 깜짝 놀란 나는 들고 있던 요리 도구를 떨어뜨리며 옆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작은딸의 아바타가 배시시 웃고 있다. 작은 딸은 지금 호주에서 살고 있다. 가끔 이렇게 아바타의 못브으로 불쑥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곤 한다. 잠시 후 큰딸의 아바타도 나타났다. 큰딸은 동생은 안중에도 없는 듯 지나쳐 내가 만드는 요리 앞에 선다. 그러더니 입맛을 다시면서 오늘 저녁 우리 집에 들를 예정이니 요리 좀 남겨달라고 말한다.
19:00 ~ 21:00
저녁 식사 후 아내와 이사 갈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거울 세계Mirror worlds 메타버스를 통해 가평 지역 단독 주택을 둘러봤다. 예전이었으면 직접 가서 집을 봐야 했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고글을 끼고 몇 시간 동안 이사 갈 집을 찾아봤지만, 마음이 확 끌리는 집이 없다. 갑자기 예전에 사두었던 땅이 생각났다. 그곳의 주소를 찍고 주변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고 있을 무렵, 건축사 버추얼 빙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에 이벤트를 진행 중이라서 설계 비용을 무려 50%나 할인해준다고 한다. 그 말에 혹한 나는 우리 땅에 가능한 설계도를 의뢰했다. 홀로그램 속 땅 위에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건축사 버추얼 빙은 시공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내하고만 의논하기 애매해서 두 딸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딸의 아바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딸의 아바타는 하늘 위로 올라가 전체적인 조망과 주변 경관에 어울리도록 이것저것 디자인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전축사 버추얼 빙이 작을딸이 말하는 대로 설계도를 변경하기 시작했다. 큰딸까지 디자인에 참여하자 버추얼 빙의 손길이 더욱 다급해졌다. 마침내 만족할 만한 설계도가 나오자 두 딸의 아바타는 활짝 웃으며 모습을 감추었다.
21:00 ~ 23:00
정신없이 설계도를 살피던 나는 9시에 중요한 약속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헐레벌떡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재작년 사고로 죽은 친구 재호의 기일이다. 재호의 가족들은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메타버스 기억을 카일룸 서비스에 보냈다. 카일룸은 죽은 이의 삶에 담긴 흔적을 인공지능으로 재구성해서 유가족에게 보여주는 서비스다. 나는 라이트 고글을 벗지 않고 재호의 집으로 바로 이동했다.
고인이 된 친구의 집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수씨, 두 아이, 친구들 6명 정도가 마당에 모닥불을 켜고 둘러앉았다. 잠시 후 주차하는 소리가 들리고 검은색 차에서 재호가 내렸다. 그는 생전과 똑같은 호탕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하하하! 죽은 사람을 뭐 그리 보고 싶다고 이렇게 불러냈어?"
그 다운 모습이다. 재호는 너스레를 떨며 밝은 미소와 함께 우리 곁에 앉는다. 재호가 떠난 지 2년 만의 재회다. 보자마자 반갑게 수다를 떨고 싶었지만 일단 가족들에게 양보했다. 제수씨는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별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직 어린 두 아이는 오랜만에 보는 아빠가 반가워서 끝없는 질물을 쏟아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후 친구들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쉴 새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너도 바이크는 절대 타지 마라! 내가 그거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하하."
"너 운동 좀 해라! 그렇게 살찌면 못써!"
살아 있을 때는 그렇게 귀찮기만 했던 짓궂은 잔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정겨운지 모르겠다.
"내년에 또 보든가 하자고."
마지막까지 그다웠다. 카일룸 서비스는 일 년에 하루만 받을 수 있게 규제하고 있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의 삶, 그 경계를 명확히 하고 현실을 살아가도록 하자는 사회적 합의다. 내년을 기약하며 그의 집에서 나왔다.
23:00 ~ 24:00
이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맥주나 한두 캔 비우고 잠자리에 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일정이 남았다. 해외에서 들어온 컨설팅 요청이다. 아무리 메타버스가 발달해도 시간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의뢰자가 요청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 시간에 일해야 한다.
24:00
맥주를 한 캔 마시며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2030년 메타버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마치 SF 소설에 나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히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이야기이기도 하다.
메타버스가 발전하면서 산업지형이 바뀌고 세상을 주도하는 기술과 기업들이 바뀔 것이다.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거나 아직은 멀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도태될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력의 발전은 사람들의 인식 속도보다 빠르고 사람들이 기술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는 속도도 무척 빠르다. 그만큼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혁신과 변화가 있으면 필연적으로 낙오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미래를 읽고 대비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채 뒤쳐지는 자로 니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지구를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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